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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成龍宗孫家文籍 11종/22점(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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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영의정(領議政)으로서 사도(四道) 도체찰사를 겸임하였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선생이 벼슬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임진란에 관하여 자필로 기록한 문헌 및 수집한 각종 자료들로서, 임진란의 연구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며 지정 목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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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
류성룡종손가문적 목록 |
종/점 |
1 |
진사록(辰巳錄) 3책 |
1/3 |
2 |
난후잡록(亂後雜錄) 2책 |
1/2 |
3 |
근폭집(芹曝集) 2책 |
1/2 |
4 |
중흥헌근(中興獻芹) 1책 |
1/1 |
5 |
군문등록(軍門謄錄) 1책 |
1/1 |
6 |
정원전교(政院傳敎) 2책 |
1/2 |
7 |
조어제당장서화첩제문(正祖御製唐將書畵帖題文)
부채제공발 (附蔡濟恭跋) 2책 |
1/2 |
8 |
당장시화첩(唐將詩畵帖) 1책 |
1/1 |
9 |
당장서첩 (唐將書帖) 2책 |
1/2 |
10 |
서애구주대통력(西厓具注大統曆) 갑진년 1책 |
1/5 |
11 |
서애구주대통력(西厓具注大統曆) 병오년 1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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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서애구주대통력(西厓具注大統曆) 갑자년 1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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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서애구주대통력(西厓具注大統曆) 병신년 1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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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서애구주대통력(西厓具注大統曆) 정유년 1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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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호성공신교서(扈聖功臣敎書) 두루마리 1축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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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록(辰巳錄) 3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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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 7년 동안에 전란처리의 최고책임자(영의정으로 사도 도체찰사 겸임)로서 그 직무 수행의 과정에서 발생한 사태에 따라, 이에 대응ㆍ대비하는 방안을 조정에 보고, 건의한 서장(書狀)을 등출(謄出) 편찬한 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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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후잡록(亂後雜錄)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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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 전후의 일들을 기록한 것이며, 전반부는 간행본 징비록 16권본 말미에 수록된 녹후잡기(錄後雜記)와 내용이 대동소이하므로 녹후잡기는 이 난후잡록을 첨삭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지만, 그 배열과 내용에는 조금 차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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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폭집(芹曝集)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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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壬辰亂) 중에 선생이 국왕 선조에게 올린 차자(箚子), 계사(啓辭)를 등출(謄出) 편찬(編纂) 책자(冊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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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헌근(中興獻芹)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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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을 일부만 간추려 복사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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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등록(軍門謄錄)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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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영의정으로 사도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를 겸하는 동안(1595-1598) 선조(宣祖)에게 올린 군무에 대한 건의문과 각 지휘관에게 군병의 훈련, 대오(隊伍)의 편성과 요새(要塞)의 수비 등을 지시한 통첩(通牒)을 수록한 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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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전교(政院傳敎)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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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壬辰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 동안에 내치(內治)ㆍ외교(外交) 및 군사를 총지휘한 선생에게 승정원(承政院)으로부터 77통의 왕명(王命)이 전달되었는데 그 원문(原文)을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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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제공발(附蔡濟恭跋)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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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가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에게 명하여, 당장시화첩(唐將詩畵帖)을 본 후에 소감을 기록하고, 번암 채재공 선생이 발문(跋文:끝에 본문의 내용의 대강이나 또는 그에 관계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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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시화첩(唐將詩畵帖)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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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 당시에 조선에 왔던 명(明)나라 장수들의 시와 그림 등을 모아서 첩(帖)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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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서첩 (唐將書帖)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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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 때 내원(來援)한 명(明)나라 장수(將帥) 30여명이 선생에게 보낸 서한(書翰) 43통을 수록한 것이다. 긴요한 정치적 안건이나 작전ㆍ군수사항 등에 관한 논의가 글 속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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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구주대통력(西厓具注大統曆) 갑진년/병오년/갑자년/병신년/정유년 각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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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사용하던 달력인 대통(大統曆)에 선생이 주요사항 등을 해당날짜 아래에 적어 넣은 것으로, 역사적 자료로도 중요하지만, 또한 관상감(觀象監)에서 발행한 오래된 역서(曆書)라는 점과, 인쇄에 사용한 관상감활자(觀象監活字)를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 일부 사진 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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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공신교서(扈聖功臣敎書) 1축(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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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 때 선생은 서울에서 의주(義州)까지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였으며, 서울의 수복에 공로(功勞)가 컸다고 하여 1604년(宣祖 37년) 6월에 호성이등공신(扈聖二等功臣)으로 서훈(敍勳)되었는데 이것은 같은 해 10월에 내린 한석봉(韓石峯) 필적의 교서(敎書:임금의 명령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