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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옥연서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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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淵書堂記

余旣作遠志精舍 猶恨其村墟近 未협幽期 渡北潭於石崖東 得異處焉 前把湖光
後負高阜 丹壁峙其右 白沙영其左 南望則群峯錯立 拱揖如畵 漁村數點 隱映烟樹間 花山自北而南 隔江相對 每月出東峯 寒影倒垂 半浸湖水 纖波不起 金璧相涵 殊可玩也 地去人烟不甚遠 而前阻深潭 人欲至者 非舟莫通 舟艤北岸則 客來坐沙中 招乎無應者 良久乃去 亦遁世幽棲之一助也 於是余心樂之 欲作小宇 爲靜居終老之所顧 家貧無計 有山僧誕弘者 自薦幹其役 資以粟帛 自丙子始 越十年丙戌粗成 可棲息 其制 爲堂者二間 名曰瞰綠 王羲之 "仰眺碧天際 俯瞰綠水외" 之語也 堂之東爲燕居之室二間 名曰洗心 取易繫辭中語意 或從事於斯 以庶幾萬一爾 又齋在北者三間 以舍守僧 取禪家說 名曰玩寂 東爲齋二間 以待朋友之來訪者 名遠樂 取自遠樂之乎之語 "自遠方來不亦說乎" 由齋西出 爲小軒二間 與洗心齋 相比 名曰愛吾 取淵明 "吾亦愛吾廬"之語 合而扁之曰 玉淵書堂 蓋江水至此 匯爲深潭 其色潔淨如玉 故名 人苟體其意 則玉之潔 淵之澄 皆君子之所貴乎道者也 余嘗觀古人之言曰 "人生貴適意 富貴何爲" 余以鄙拙 素無行世之願 譬如미 鹿之性 山野其適 非城市間物 而中年妄出宦途 汨沒聲利之場 二十餘年矣 擧足搖手 動成駭觸 當其時 大悶無聊 未嘗不?然 思茂林풍 草之爲樂也 今幸蒙 恩解綬南歸 軒冕之榮 過耳鳥音 而一丘一壑 樂意方深 是時而吾堂適成 將杜門?掃 潛深伏奧 仰乎一室之內 放浪乎山谿之間 圖書足以供玩 索之樂 疏려足以忘추환之美 佳辰美景 情朋偶集 則與之窮 回溪坐巖石 望靑天 歌白雲 狎魚鳥 皆足以自樂而忘憂 嗚呼 斯亦人生適意之大者 外慕何爲 懼斯言之不固 聊書壁而自警

丙戌季夏 主人 西厓居士記

【국역】

내가 이미 원지정사를 지어 놓았으나 아직도 아쉬움이 있는 것은 마을이 멀지가 않아 그윽한 맛을 누리기에는 흔쾌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북쪽으로 소를 건너 돌 벼랑 동쪽으로 특이한 터를 잡았는데, 앞에는 호수의 풍광을 지녔고 뒤로는 높다란 언덕을 업었으며, 오른쪽에는 붉은 벼랑이 치솟아있고 왼쪽으로는 흰모래가 굽이쳐 있는 곳이다.
남쪽으로 바라보면 뭇 봉우리들이 들쭉날쭉 서서 마치 두 손을 마주 잡고 읍하는 형상이 한 폭의 그림이요, 어촌 두어 집이 안개 속 나무 사이로 흐릿하게 아른거린다.
화산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달려오다가 강을 대하고 멈추어 섰으니, 달이 동쪽의 산봉우리에서 떠오를 때마다 차가운 산 그림자는 반쯤 거꾸로 호수에 드리워지고, 잔잔한 물결도 한 점 없으니 강물에 금과 옥이 잠겨있는 듯한 광경이야말로 아주 볼 만하다.
이곳이 인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나, 앞에 험하고 깊은 소가 있어 오고자 하는사람이 있어도 배가 없으면 올 수가 없다. 배를 북쪽 기슭에 메어두면 사람들이 와서 모래에 앉아 소리쳐 부르다가 대답이 없으면, 대개 오래지 않아 돌아가니 이 또한 세상을 피해 그윽히 들어앉아 사는 일에 한 가지 도움이 된다.
나는 이것을 마음 속으로 좋아하여, 조그마한 집을 지어서 늙도록 조용히 거처할 곳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마침 산승 탄홍이란 자가 그 건축을 스스로 주관하기로 하고 곡식과 베를 내어놓으니, 병자년(선조9년, 1576년)에 일을 시작하여 10년이 지난 병술년(선조19년, 1586년)에야 대충 끝내었으니 깃들고 쉴만하게 되었다.
집 구조는 당 2칸은 감록헌이라 이름하였으니 왕희지의 "우러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래론 물굽이 바라보네"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고, 이 당 동쪽에 편히 쉴 방 2칸을 지어 이름은 세심재라 하였는데 주역 계사편 중의 말뜻에서 취하였으니, 혹 여기에서 일하여 만에 하나라도 이루어지기를 바람이다.
또 세심재 북쪽 3칸은 이 집을 지킬 중을 위해 선가의 말을 따서 완적재라 하였다.
동쪽 집 2칸은 벗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원락재라 하였는데, 이것은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란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재의 서쪽에 조그마한 마루 2칸을 꾸며 세심재와 더불어 나란히 있는데 이름은 애오헌이라 하였다. 이 명칭은 도연명의 시에 "나 또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하노라"란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
이 모두를 모아 편액 하여 옥연서당이라 하였다.
대개 강물이 흐르다가 이 곳에 이르러서 물이 돌며 깊은 소가 되었고 그 물빛이 깨끗하고 맑아 옥과 같은 까닭에 이름한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그 뜻을 본받고자 한다. 그런즉 옥의 깨끗함과 소의 맑음이란 모두가, 군자가 귀하게 여길 도인 것이다.
내가 일찍이 옛사람의 말을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인생이란 스스로 뜻에 맞는 것이 귀한 것이지 부귀가 무슨 귀한 것이 되리요"하였거니와, 내가 옹졸하고 부족하여서 평소 행세하기를 원치 않았으나 "고라니 사슴의 천성은 산야에 삶이 알맞지 시정 간에 살 동물이 아니다"라고 한 말과 같다.
중년에 망령되게도 벼슬길에 나아가 명성과 이득을 다투는 마당에서 골몰하기를 20여년이었다. 발 들고 손 흔들 때마다 걸핏하면 놀라고 부딪치기만 했으니 그 때마다 크게 걱정하며 할 일을 잊고 슬퍼하지 않은 때가 없었으나 이곳의 무성한 숲과 우거진 풀덤불을 생각하며 즐거움을 삼았다.
이제야 임금님의 은혜를 입어 벼슬을 벗어나 남쪽으로 돌아오니 높은 벼슬의 영화란 지나가는 새소리이고, 이 언덕과 저 골짜기의 즐거움이 깊어 가는데 때 마침 나의 집이 완성되었다.
이제 문을 닫고 찾아오는 손을 물리치고 방안에 깊이 들어가 산과 물을 보며 지낼까, 산골짝을 이리저리 거닐어 볼까, 글을 짓거나 읽음을 만족하며 그 속에서 낙을 찾고 거친 밥이나 맛있는 음식의 기름진 것을 잊기에 족하니 좋은 때 아름다운 경치에 정겨운 벗들이 우연히 모여들고 그들과 함께 할말 없어지게 되면 골짝을 돌며 거닐기도 하고 바위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흰 구름을 노래하기도 하고, 물고기 새들과 희롱하며 놀고, 모두가 스스로 마음을 즐겁게 하여 근심을 잊을 수 있으리라. 이것 또한 인생에서 뜻대로 되는 큰 것인데 밖에서 달리 무엇을 찾으려 하는가? 내 이 말을 굳게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 애오라지 벽에다가 글로 써 붙여 놓고 스스로를 삼가고자 하노라.
병술년 늦여름 주인 서애거사 씀